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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목록
Busan Novelists' Association

26회(2021년) 김가경

수상작 : 은아의 세계
               심사위원 : 구모룡(문학평론가) 정영선(소설가) 전성욱(문학평론가) 

  저희 심사위원들은 김가경의 「은아의 세계」(『오늘의 좋은 소설』, 2021년 여름)를 올해의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올해부터 기수상 작가의 작품을 선정할 수 있게 되었으나, 역시 기수상 작가에게 다시 한 번 수상의 영예를 안기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은아의 세계」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나름의 용단에는, 그 선정 자체로써 지역의 작단에 중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충정이 크게 담겨 있습니다.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은아의 세계’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대립과 충돌을 서사화하는 소설의 갈래적 형식은, 소설이 단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작업 이상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난폭하고 난해한 이 세계를 살아내는 미약한 인간의 위대한 실패와 그 극복의 성실한 열정을 표현하는 글쓰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다시, ‘은아의 세계’는 무엇일까요? ‘은아의 세계’란 복잡하고 모호한 것들이 주는 불편함과 힘겨움을 감당하거나 무릅쓰지 않고 그것을 명료하고 명백한 것으로 쉽게 규정해버리고 마는 나태함과 안일함에 저항하는 세계입니다. 그 나태함, 안락에 굴복할 때 우리는 거짓된 해결책이나 허황한 해답을 주는 사악하고 막강한 힘들에 의지하게 됩니다. 책의 지식과 삶의 지혜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스스로 태만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성실을 강요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의 세계에서 은아의 존재론이 한줄기 희미한 빛을 발합니다. 은아는 인간과 뱀 사이에서 어떤 위계도 위화감도 없이 설화의 세계 속으로 융화될 수 있는 교감과 소통의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은아의 세계’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손쉬운 이분법의 해결책으로 타협하지 않고, 세계의 모호함이 갖는 난해한 역설을 깊숙이 파고듭니다.

25회 (2020년 ) 정미형

수상작: 남원 어딘가에
               심사위원 : 구모룡(문학평론가) 정영선(소설가) 황국명(문학평론가) 

  심사위원들은 40편이 넘는 작품을 두루 읽었다. 한국문학의 최근 흐름과 같이 3, 40대의 약진을 기대하였다. 또한 고령화된 지역 문단의 사정을 고려하여 5, 60대의 쇄신과 만나기를 고대했다. 어느 경우든 우리 지역(부산, 울산, 경남)의 소설 생산력이 현 단계 한국문학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측면이 있음을 아프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일정한 성취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보람이 되었다. 알다시피 작품성을 가장 전면에 두는 부산소설문학상의 전통에 따라서 엄정한 심사에 임하였다. 더군다나 울산과 경남까지 포함하는 권역으로 심사대상을 넓혔고 상금도 늘린 마당이라 새로운 원년이라는 생각으로 충실한 분석과 토의를 이어갔다. 로컬의 경험적 서사가 많아진 점은 다행이지만 소재주의적 편향에 기울어지거나 단편소설의 미학적 장치들을 조밀하게 활용하면서 플롯의 벡터를 치밀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다소 주춤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어쩌면 서술자가 만드는 거리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인물과 갈등과 사건을 서술하는 전 과정에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미적 거리를 형성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거리 만들기 과정의 결락을 더러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토론을 거듭하여 최종적으로 우리는, 정미형의 「남원 어딘가에」를 남겼다. 이 작품의 미덕은 여러 가지로 지적되었다. 먼저 이중 혹은 다중 시점으로 서사를 끌어간 점. 자칫 시점의 이동과 통합의 과정에서 걸리적거리는 파열을 만들 수 있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서술의 방법인데 이를 매끈하게 마무리하였다. 둘째 가족 서사로 회수될 수 있는 소재를 충실하게 여성의 문제의식으로 이끌어간 점. 제기를 매개로 가족 내부에 존재하는 삶의 단층들을 단일한 사건으로 꿰어내는 솜씨를 보였다. 셋째 구체적인 삶에 대한 수준 높은 해석이 이뤄진 점. 세대를 달리하는 가족 구성원의 삶에 대한 정념과 의식을 인간학적 깊이로 이해하였다. 마지막으로 서술자의 서술이 세목을 놓치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진행된 점에서 작가가 이전의 작품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의 서술 능력을 드러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칫 산만해지거나 밋밋하게 끝을 맺을 수 있는 서사를 문제 제시형으로 처리하여 독자에게 해석 가능성을 부여한 대목도 작가가 서술을 장악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수상을 축하하며 이를 계기로 정진을 거듭하기를 바란다.

24회(2019) 정광모

수상작 : 콜트-45
               심사위원 : 구모룡(문학평론가, 글), 황국명(문학평론가)

  주제의식과 서술능력이라는 두 가지 척도를 두고 우리는 심사에 임하였다. 먼저 두 매체(『The 좋은 소설』과 『작가와 사회』)에 소설이 게재되는 방식을 생각하였다. 우수한 작품을 내외에 내보여 수준을 향상하려는 매체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전자의 경우 심하게 말하여 습작 수준도 포함하고 있었다. 텍스트 바깥의 작가와 안의 서술자가 구별되지 못하여 수필로 기우는 서술도 보였다. 매체의 혁신이 필요한 대목이다. 소설은, 체험에 바탕을 두든, 사실에 근거하든, 이야기를 가공한 허구이다. 서술자를 내세우고 인물을 창조하여 서사의 얼개를 만들어가야 한다. 특히 단편은 완결성을 요구한다. 서술과정이 치밀하게 직조되어야 하는데 느슨하면 이야기로 풀어질 수 있다. 플롯은 상호 긴밀한 구성력의 벡터에 의해 형성된다. 암시와 복선, 반전 등의 수법을 긴요하게 활용해야 한다. 결말을 문제제시로 열어둘 것인가 설명으로 마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경향이 많아 염려된다. 서술만 중요한 게 아니다. 묘사력은 소설의 구체적인 질감이다. 이를 더해야 실감으로 전달된다. 주제의식은 물론 강조되어야 한다. 단편이 생의 한 단면을 말하기에 주제가 마냥 무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총체성을 다루는 장편이 다룰 주제를 단편에 가져올 수는 없다. 여전히 가족 플롯의 비중이 큰 가운데 비정규직과 취업준비생, 죽음으로 내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수이다. 일정 정도 현금의 한국소설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미 23명의 수상자를 내었다. 이들 가운데 단편은 물론 장편을 통하여 성장을 거듭한 이들도 있고 수상작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 분들도 있다. 전반적인 장기 침체 현상을 우려한다. 이번 심사대상에서 수상자의 작품으로 눈에 띈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상한 적이 없는 작가들의 열의가 더 컸다. ‘부산소설문학상’이 작가들에게 큰 계기가 되는 방안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심사위원은 각기 다섯 작품 정도를 추려 상호 토론하였다. 이리하여 두 편을 최종에 남겼는데 배이유의 「홍천」과 정광모의 「콜트 45」이다. 두 편 모두 서술능력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보다 나은 평가를 받았다. 배이유의 홍천은 동반 자살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마침내 한 사람을 제외하고 생을 다시 거머쥐는 과정을 다룬다. 반전의 필연성이 약한 점은 흠이었으나 서술과정에서 보인 묘사력이 뛰어났다. 정광모의 「콜트 45」는 이야기를 플롯으로 구성해가는 서술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설명과 묘사를 거듭하면서 서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솜씨도 일품이다. 다만 소재를 취득하고 이를 소설로 만드는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는 경험과 사실에 바탕에 둔 서사가 주류인 상황에서 낯선 개성이다. 그동안 정광모는 두 편의 장편과 세 권의 단편집을 발간하였다. 소설 쓰기에 그가 들인 공력을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최근 발간한 장편 『마지막 감식』이 담아낸 주제의식도 만만치 않다. 가짜와 진짜, 허구와 진실의 문제를 금융자본주의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파헤쳤다. ‘부산소설문학상’이 장편을 심사대상으로 하진 않는다. 다만 참조 사항일 뿐인데 정광모의 의지와 가능성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광모와 배이유의 작품 사이에 어떤 우열을 말하려 하진 않는다. 두 편 모두 수월성과 함께 약간의 결함을 지닌다. 심사위원들은 정광모의 「콜트 45」를 2019년 ‘부산소설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변함없이 창작에 열의를 더하기를 기대한다.

23회(2018년) 이미욱

수상작 : 밤이 아닌 산책
               심사위원 : 유익서(소설가), 구모룡(평론가), 황국명(평론가)

  60편에 이르는 부산 작가들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는 즐거움이 컸다. 경향과 기법 그리고 수준 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심사에 임한 우리는, 이미 상을 받은 작가와 아직 상을 받지 못한 작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작품을 읽었다.

먼저 전반적으로 가족 서사가 많다는 지적을 하게 된다. 가족 이야기가 여전히 우세한 기본플롯이지만 새로운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설명이 많고 플롯이 약한 작품도 더러 있었다. 단편소설을 두고 ‘시적’이라고 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시적 표현을 요구함이 아니라 삶의 단면을 완결된 형식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정한 답보다 암시를 통해 문제를 제시하는 형식이거나 서서히 당기되 화살을 끝내 시위에서 놓지 않는 긴장된 형식을 요청한다. 아울러 인물의 성격을 행위와 말을 통하여 극적인 방식으로 형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러한 지적을 두고 고전적인 방법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터인데, 그렇지만 플롯의 약화와 이야기의 넘침에 대한 우려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미 수상한 작가 가운데 조갑상, 김일지, 박향, 이정임, 김가경이 변함없는 성취를 견지하고 있었다. 아직 수상하지 못한 작가들로서 관심을 이끈 이들은 김정진, 나여경, 배이유, 신호철, 이미욱, 정미형 등이다. 수상자를 정함에 있어 우리는 앞선 수상자들을 배제하여도 좋겠다는 데 동의하였다. 이는 수준에 있어서 거론된 작가들의 작품을 심사하여 상을 주어도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화장」, 「줄」, 「검은 붓꽃」, 「슈뢰딩거 고양이」, 「밤이 아닌 산책」, 「수박의 맛」을 두고 우리는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노년과 죽음에 대한 주제의식을 심화하였다는 점에서 「화장」이, 다소 낯익은 제재이지만 돋보이는 인물 형상화로 「줄」이 거론되었다. 병치의 효과를 노린 「검은 붓꽃」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었다. 제재의 무게를 뒷받침할 만큼 더 촘촘한 서술의 밀도가 요구되었다. 「슈뢰딩거 고양이」가 청년 문제를 충격하는 방식이 확연하였고,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 드러낸 서술능력을 수긍하였지만, 결말에서 의미를 더 증폭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게 되었다. 「수박의 맛」은 차이나는 반복을 통하여 의미를 심화하는 묘미를 지녔으나 역시 잦은 설명이 티가 되었다. 이미욱의 「밤이 아닌 산책」에 더 많은 시간을 두고 논란한 일은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절대적인 비교 우위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인물의 행위, 분위기와 정황의 변화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의미를 끌어올리는 서술방식에 방점을 두었다. 소통 부재와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주인공은 집을 나와 우울한 산책을 거듭하면서 유산으로 인한 상처의 ‘흰 그림자’에 유인되어 물속으로 침잠한다. 내면의 그림자가 부르는 대로 안개 낀 강을 떠내려가면서 죽음의 유혹은 뜻하지 않은 구원으로 반전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을 객관적 시선으로 그려내려 한 서술자의 태도는 무감각 사회를 유추하게 하는 결말의 우연에 상응한다. 소외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포착하면서 죽어버린 오필리아가 아니라 일상으로 귀환하는 치유의 의의를 반추할 수 있게 한다. 비극이 우연에 의해 희극으로 뒤집혔다는 점에서 작가의 소설적 탐구는 다시 유예되었다. 이 또한 가능성이자 미덕이다. 수상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축하한다.
 아울러 수상하지 못한 작가들의 창작 의지와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이 상이 소설 문학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2회(2017년) 허 택

수상작 : 캐리돌 뉴스
               심사위원 : 구영도(소설가), 전용문(소설가)

  원인불명의 난임이라는 의사의 판정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답답하고 어지럽다. 결국 불임이 그 트라우마 때문이란 말인가.
그는 매일 지극정성으로 요양병원을 찾았고, 할머니의 유언대로 나는 그와 결혼했다.
동사무소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그가 개척교회에 왔을 때 장 전도사가 새 신자교육을 나에게 맡겼다. 그의 시선은 항상 내게로 향해 있었다. 그의 입안에서 풍기는 은단 냄새는 봉인된 기억을 되살렸다.
봉인된 기억이란 산골 판자촌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할머니와 어린 딸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오물 냄새가 풍기는 산골 판자촌 마을에 남겨진 할머니와 딸은 생존을 위해 오물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미성년인 딸은 할머니의 묵인 하에 이웃 할아버지의 성 노리개가 되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은단 냄새는 수없이 성폭행을 범한 놈들 중에서 항상 마지막 순번의 놈에게서 풍기던 바로 그 냄새였던 것이다.
이 작품의 중심은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다. 남편의 권유로 남편과 함께 산골 판자촌을 방문한다. 첫 방문에서는 입구에서 도저히 숨을 쉬지 못해 동네에 들어가지 못한다. 다음에는 오롯이 내 의지로 방문의 결단을 내린다. 남편과 함께 마을을 방문한다. 엄청 변한 동네의 풍경 속에서 성폭행 범인 중의 한 명, 미친 들개 같았던 훈이가 카페 주인이 되어 가정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봉인된 기억의 현재 모습을 맞닥뜨린 나는 정신과 치료도 받지 않지 않게 되는 등 트라우마가 치유되어간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불임이 치유될 징후를 느낀다.

  참으로 오물같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소재다. 주인공은 내면의 깊은 상처를 결코 저주나 투쟁으로 치유하지 않는다. 가해자를 저주하거나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할머니나 남편의 지극한 사랑이 작품 전편에 잔잔히 흐르고 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가해자를 향한 저주나 투쟁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오물 냄새가 진동하는 누추한 유년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기고, 주변 인물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구원을 얻는 전개를 통해 작가는 시궁창에서 따뜻한 인간성이라는 샘물을 길어 올렸다. 이는 작가의 역량이다.

21회(2016년) 김가경

수상작 : 첫눈
               심사위원 : 김헌일(소설가), 유익서(소설가)

 첫 눈이 내리던 날 형사로부터 유일한 피붙이인 형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으며 도리어 안도하는, 어쩌다 세상에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세탁소 주인. 어릴 적 하늘에 온통 하얀 솜털처럼 첫눈이 내리던 날 철없는 어린 부모로부터 지하방에 유기 되어 죽어가던 중 겨우 발견되어 구급대원에게 구조된 영양사 조미영. 기약 없는 무대 출연에 대비하여 정기적으로 연미복을 세탁소에 맡겨 주름을 세워놓는 전직 테너 가수(?) 병원 사무장의 하염없는 기원.

세상에 태어난 연유도 아리송하고 연고도 하나 없는 세탁소 주인과 영양사 조미영은 보잘것없지만 발붙일 터를 잡아 바야흐로 안정을 찾고 삶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가진 것도 변변치 않고 삶의 기반 역시 별로 든든하지 않지만 어느 새 인정을 베푸는 따뜻한 성품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병원의 첫째 사위이며 이태리에서 성악을 전공한 테너가수라고 알려진 병원의 사무장은 겉과 속이 판이한 인물이다. 아내의 장기 외유와 처가 식구로부터 겉돌며 유리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며 넥타이를 세 번이나 고쳐 매는 아웃사이더로 배척을 받고 있으나 직원들에게는 당당히 군림하려 든다. 입지도 않은 연미복을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세탁을 맡기는 사무장의 허세가 가소롭다. 세탁소 주인은 무료로 연미복을 세탁해 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지만 그러나 사무장은 도리어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사무장에게 멱살을 잡힌 순간 세탁소 주인은 연미복이 사무장의 치수에 맞지 않음을 간파한다. 사무장은 주위의 눈을 의식한 가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아름다운 희망과 아무리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은 가식적인 욕망을 잘 대비시켜 가며 ‘사는 것이란 원래 이런 것이야’ 하고 낮은 음성으로 조곤조곤 우리 귀에 속삭여주는 작가의 솜씨가 여간 아닌 것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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