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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서유기賊西遊記 1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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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rdix 작성일23-01-26 10:57 조회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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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서유기賊西遊記

황 인 규

 

 

신축년 여름 행사에서 만난 도적놈 몇이 작당해 소소한 모임을 만들었도다. 이들은 스스로 칭하기를 도적은 도적이되 재물을 강탈하는 도적이 아니라 글로써 마음을 훔치는 심도心盜.

 

만국평화와 인류애를 드높일 위대한 문학작품의 탄생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신모, 권모, 김모, 황모가 각자 손톱을 깨물며 맹세하길, 금세기 전반부 안에후반부엔 생을 졸할 것 같기에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남기기로 하매, 달에 한번씩 모여 토론과 합평을 하기로 했다.

 

거창한 명분을 내건 모임이 대개 그렇듯 이들의 회합 역시 실상은 내세운 기치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여 이들이 노는 모냥 좀 살펴보자.

만나기만 하면 미식을 탐하나 입에 들어오는 건 걸식이오, 입만 열면 걸쭉한 육담肉談에 회고하느니 질탕한 춘사春事. 세상잡사 입에 거품 물고 천하를 들었다 놨다, 육도삼계를 뒤집었다 바로놓았다 설레발 치다가, ‘너 어디냣!’ 마눌님 문자 한 통에 새가슴 부여잡고 안절부절 종종걸음.

 

일찍이 공선생孔子이 문질빈빈이라, 겉과 속이 어우려져야 군자라 했건만, 이들 도당은 허구헌 날 음질빈빈淫迭頻頻에 표리부동. 실속 없는 농아리로 속이 허해 출출함을 달래려 이리저리 전통 때리면 매번 허당이라. 왜 다들 바쁘고 그날따라 선약이 있는지 원. 도당 모두 같은 입장인지라 서로의 현실을 꼬집지 않는 매너만큼은 철저히 지켰겠다.

 

음담과 패설도 하루이틀, 어느 날 재떨이에 담긴 꽁초의 장단과 건습을 분류하던 황모가 분연히 일어나 이럴 순 없다. 내 비록 행장은 누추하나 만국의 평화를 위해 세상을 주유하고 그 경험담을 주옥같은 글로 다듬어 후세에 길이 남을 걸작을 내놓으리라하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모가 만국평화를 이루기 전에 네 가정의 평화를 먼저 이루도록 하라는 말에 황모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번에는 권모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더니 인류애는 공영의 원천이라 내 비록 열정은 예전 같지 않지만 천하의 재사才士를 찾아뵙고 그들의 심오한 탁견을 미사여구로 남기리라.” 하였다. 그러자 비스듬히 누워 곰방대 뻐끔대던 신모가 말하기를 천하의 인사를 찾기 전에 주루의 홍마담과 얽힌 춘정이나 먼저 정리해라!” 하니 권모 움찔하며 암말 않고 제 자리에 털썩 앉더라.

 

연장자 신모가 말하길 우리 모두 한때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리고자 혼신의 노력으로 벼루를 갈고 붓을 적셨으나 지가를 올리기는커녕 폐지값만 떨어뜨려 리어카 미는 할매들의 힘만 뺐으니 그 죄가 가볍지 않다. 모다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하매, 황모가 덧붙이기를 저 역시 대중의 심금을 울릴 명작이라고 썼으나 대중은커녕 궁핍한 마누라와 메마른 자식의 가슴만 울리고 말았습니다.”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김모 역시 한마디 거들기를 저는 한때 일필휘지로 천하대세를 가름하는 글을 썼지만, 세태가 바뀌어 유튜브 세상이 되니 일필휘지는 그들이 사인할 때나 쓰이게 되더이다. 하여 나도 유튜브로 갈아타고자 하니 세상의 잡설가들이여 말을 글로 쓰지 말고 글을 말로 쓰길 바란다.”

 

이렇게 오늘도 공허한 말을 허공에 뿌리고 나자 다들 허탈했다. 삼동三冬에 허연 동태 눈깔로 허공을 바라보던 황모가 문득 시선을 거두더니 말했다.

우리 이러지 말고 큰산에 거하는 도사를 찾아가 길을 물어봅시다. 근래 지리산 이도사의 창작이 들불처럼 왕성하던데 그 비결을 캐봄 직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듣자 도당 모두 와, 하고 손뼉 치고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신모가 황모에게 네 입에서 나왔으니 네가 마무리 지어라, 하자 황모가 붓을 들기를.

 

 

전략

, , , 그리고 황모가 이 씰데없는 모임의 멤버입니다.

모임에서 다음번 포행을 지리산 이도사를 방문해 한 수 배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주인장의 허락 없이 저희들끼리 정하는 도적놈 심보라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자고로 천상천하를 막론해 세 가지 도적질이 용인되는 바,

첫째가 천계의 를 훔쳐 불로장생을 꾀하는 것이오.

둘째가 절세미인의 마음을 훔치는 짓이오,

셋째가 장부의 호연한 기상을 훔쳐 널리 퍼뜨리는 일이라.

 

굽어보면 천심녹수요 돌아보면 만첩청산이라.

강호에 은일하며 유유자적 필력을 뽐내는 은자의 비결은 무엇인가.

겉으론, 언제든 방문 환영한다는 쥔장의 언사를 핑계 삼지만,

속내는 님의 왕성한 창작비결이 풍수와 지세地勢에 힘입은 건 아닐까,

몰래 염탐하고자 함이올시다.

하여, 모년 모월 모일에 산청으로 원행遠行할까 하는데

도사께서 허하실만한지요?”

 

답신이 오길.

 

구름은 허공에 머루지 않고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데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높으신 법사님들이 방문하신다면 봉필생광蓬蓽生光이올시다

일석상대一席相對도 다생多生의 연이라 하였거늘 하물며 소협의 문도임에야.”

 

큰산의 도사답게 쿨한 답이 왔다.

이에 고무된 도적들 급히 구루마를 수배해 서쪽으로 한유閑遊하니 벽공의 하늘에 웃음소리가 드높더라.

굽이굽이 길을 따라 심산계곡으로 들어가던 중 권모가 갑자기 구루마에서 뛰어내리더니 사방을 휘돌아보며 말하길.

 

내 소싯적 풍수에 심취했던바 이곳의 지세는 장풍국藏風局이라.

안산으로 된바람을 막아주고 소담小潭이 한밭을 물리치니 바야흐로 금탕金湯 성지로다

드센 영웅호걸보다는 지사와 문사는 능히 배출할만한 곳이로다.”

 

이에 세 도적도 하아, 호오, 하며 감탄의 성을 내뱉으며 호응하였다.

한 구비 돌아가자 한설寒雪에 도포자락 흩날리며 늠연하게 서 있는 선비의 자태가 보이니 바로 이도사라.

  

간밤에 휘황한 별이 천곡성을 가르기에 귀한 손이 오실까 기다렸습니다

문단의 대덕들께서 누추한 벽지를 왕림하시니 산천이 다 빛을 발하옵니다.”

 

도사의 깍듯한 예의에 평소 범절과 담쌓고 지내던 네 도적들 황망히 허리를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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