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소설가의방 > 소설가의방

소설가의방
Busan Novelists' Association

 

김성종 소설가 <여명의 눈동자,197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5-12 17:43 조회167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12회 선배와 초록의 만남>에서 선배님들의 등단작 낭송 행사가 있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께선 등단작이 아닌 여명의 눈동자를 발췌해서 낭독해 주셨습니다.

  

 

大陸의 밤

 

압록강(鴨綠江)이었다.

화차까지 길게 달린 기차는 마침내 덜커덩하고 철교에 부딪쳤다.

덜커덩 덜커덩 덜커덩.

철교는 수면으로부터 높이 솟아 있었기 때문에 쇠바퀴가 부딪치는 소리는 매우 웅장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한참 동안 주위를 울렸다.

그만큼 열차는 길고 길었다.

대륙으로 진출하는 일본제국 육군을 잔뜩 태우고 있는 열차인 만큼 그 어느 열차보다도 길 수밖에 없었다. 열차 후반부는 병력이 아닌 화물칸이었는데 모두가 밀폐되어 있어서 일반 사람이 보기에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강 위로 어둠이 막 풀어내리고 있었다. 어둠과 함께 눈도 내리고 있었다.

눈은 대륙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타고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갑자기 군가가 터져 나왔다.

 

갓떼 구루소도 이사마시꾸

지갓떼 구니오 데다까라와

데가라 다데스니 시나료오까

신군 랏빠 기꾸다비니

마부따니 우까부 하다노나미

 

이겨서 돌아오마고 용감하게

맹세하고 나라를 떠나온 이상은

수훈을 세우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

진군 나팔 들을 때마다

망막에 떠오르는 깃발의 물결

 

군가는 두 번 세 번 거듭되면서 우렁차게 허공을 울렸다. 마치 일본 육군의 무한한 진군이 약소이나 되어 있는 듯이…….

졸고 있던 여옥(麗玉)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창문 하나 없이 막혀 있어서 안은 몹시 어두웠다. 함께 타고 있는 여자들이 노랫소리에 모두 정신이 드는지 여기저기서 부시럭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달려왔는지, 그리고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그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더더구나 몰랐다.

사지가 오그라붙고 턱이 덜덜 떨릴 정도로 날씨가 추웠다. 소변이 몹시 마려웠지만 그녀는 움직이기가 싫어 그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 압록강!”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소리쳤다. 잠깐 무거운 긴장이 흐른 다음 여자들은 우르르 일어나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제서야 여옥이도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기어갔다.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1975) 도입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