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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혜린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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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erdix 작성일22-10-30 15:09 조회3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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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전혜린

 

                                                                                                                                                 황 인 규

 

 

 

  “내가 독일 땅을 처음 밟았을 때는 가을도 깊은 시월이었다.”

 

  해마다 시월이 깊어 가면 이 문장이 떠오른다. 굳이 회상이 아니라 내 몸 어딘가에 박혀 있는 기억세포가 가을이 되면 저절로 켜지는 것이다.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누나 친구가 가지고 있던 책에서 이 문장과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누나와 친구는 여고 2학년였다. 우리 집에 놀러 온 그녀는 자신의 책을 내 책상 위에 놓고 우리 누나와 수다 떨기 바빴다. 그녀는 명문여고에 다니는, 선망의 눈길이 절로 이는 여고생이었다.

 

  딱히 미인이랄 순 없지만 왠지 기품 있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얀 교복칼라 밖으로 나온 목이 수선화 대처럼 길었고, 그것이 그녀의 고고함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깡총한 단발머리가 유난히 목을 길어 보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누나가 오는 날이면 나는 왠지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작 공부는 안되고 공부하는 은 유난히 잘 되었다ㅡ다른 때는 그 척도 잘 안 되는데ㅡ

 

  그녀가 가져온 전혜린의 책을 살짝 펼쳐보았다. 이국의 지명이 연속으로 나왔고, 낯선 이름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질감 느껴지는 지명과 이름이 외려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타국에 홀로 떨어져 지내는 젊은 유학생의 감성이란, 별것 아닌 일에도 감정의 과잉이 일어나고 사소한 사건에도 예민하게 굴기 마련일 터인데.

 

  “재밌니?”

  어느샌가 그녀가 등 뒤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 잘 모르겠어, 누나.”

  나는 깜짝 놀라 얼떨결에 답했다.

 

  “전혜린은 자살했어.”

 

  작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왜 나에게 일깨워줬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녀도 글보다 작가의 비극적 생의 마감에 더 주목한 건 아닐까. 내용보다는 작가의 삶 그 자체의 서사에 매혹되는 일 말이다. 그건 지금에 와서의 생각이고 당시엔 이렇게 다른 차원의 글을 쓴 작가가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다니 그 자체가 굉장한 소설을 읽는 것처럼 비장미가 느껴졌다.

 

  “나도 딱 전혜린 나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중학생인 네가 뭘 알겠냐만은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어, 하는 투로 말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내가 들고 있는 책을 건네 받고는 누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며칠 뒤 친구의 권유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누나도 그 책을 구해 책상에 꽂아 놓았다. 나는 종종 누나의 책을 꺼내 아무렇게나 펼치고 되는대로 읽었다. 하지만 낯선 어휘와 동조할 수 없는 감정의 결 때문인지 그다지 몰두하진 못했다. 그 뒤로 전혜린이 호출될 때면 나는 그녀를 떠올린다.

 

  서두의 첫 문장 다음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물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칙칙했다. 스카프를 쓴 여인들과 가죽 외투의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없는 비행장 뮌헨 교외 레임에 내린 내렸을 때 나는 울고 싶게 막막했고 무엇보다도 춥고 어두운 날씨에 마음이 눌려 버렸다.”

 

  교과서의 딱딱한 문장만 접한 나에게 전혜린의 감각적 묘사는 견고한 틈새를 파고든 칼날이었다. 두껍고, 무겁고, 칙칙하게, 라고 표현한 하늘은 맑은‘ ’파란이라는 형용사만 떠올리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혜린은 육십 년대 청춘들의 우상이었다. 일단 자, , 등의 글자로 끝나던 대부분 여성과 달리 그녀 이름의 마지막은 으로 끝난다. 유음이 첫 글자의 초성에 오면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두음법칙이 생겨난다. 하지만 끝 글자의 초성에 위치하면 부드럽게 넘어가며 여운이 남는다. 혜린의 도 그랬다. ㄹ ㄹ ㄹ~ 하다가 받침 ㄴ에서 딱 멈추면 왠지 메아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암튼 당시로선 드문 이름이었다. 게다가 뜻으로 볼 때도 기린이 아닌가. 이 세상에 없는 전설 속의 동물 말이다.

 

  전혜린은 전후(戰後)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 이 땅의 청춘들이 감히 다다를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고 그 경험담으로 청춘들의 가슴에 동경과 판타지를 심어 놓았다. 변방의 청춘들이여, 너희들이 몸담고 있는 세상은 하찮고 실망스럽도다. , 혜린은 세련된 문명의 중심지에서 몸소 겪은 바를 전언하노니 그대들이여 깊이 배우고 감동하라. 나의 선지자 역할은 여기서 끝나노니 남겨진 청춘들이여, 부디 모더니즘을 찬양하고 숭배할지어다!

 

  하지만 당시의 청춘들은 혜린의 도도한 정서에 동화되지도 감염되지도 않았다. 잠시 이국의 지명에 취하거나 이방의 정서에 혹할 순 있었지만, 이국적 취향에 많을 걸 할애하기엔 현실이 너무 팍팍했다. 이 땅의 청춘들에게 이국땅이 멀리 느껴지지 않게 되면서부터 전혜린은 잊혀졌다. 그녀의 외로움은 소녀적 감상으로 치부되었고, 오십년대적 감성은 세련되지 못한 넋두리로 취급되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혜린이란 코드는 내 감수성의 영토에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혜린이 어린 청춘의 잠을 깨워 푸른 감수성의 바다로 인도했던 공만은 인정해야 한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이 내 청춘의 일정 기간 노트에 항상 적혀 있었던 게 그 증거다.

 

그리고 나에게 전혜린을 알게 했던 그녀, 전혜린보다 두 배도 더 산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늙어 있을까. 이건 상상하고 싶지 않다.

 

 

                                                                                                                                임인년, 시월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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