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자유게시판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Busan Novelists' Association

 

최학림/몇 가지 견해를 말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2-11 21:39 조회1,065회 댓글1건

본문

부산소설문학상 권위와 관련한 기사를 처음 쓴 입장에서 몇 가지 견해를 말하고자 합니다.

 

1. 기사를 쓴 것은 전적으로 저의 판단이고 저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심사과정을 유출해 물의를 일으켰느니 등의 논란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별로 좋지 않은 용어(‘뒤통수’)까지 등장시키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느니 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습니다.

해당 <기자일기>는, 언론사에서 통상 기자의 관점이 강하게 들어갈 수 있는 칼럼식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쓰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제가 작품을 읽고서 심사평이 납득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선후 관계를 말하자면 그 점이 제일 먼저였고, 그것이 ‘만장일치’ 표현을 빼자는 심사평 수정으로 자료를 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기사를 쓰게 된 것은 제가 취재 확인한 바에 따르면 소설가 10여 명이 이번 선정작에 대해 갸웃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수의 소설가들이 선정작을 읽고서 의문을 표했다는 것입니다. 이 간극이 무엇이냐, 라는 것이 기사를 쓰게 된 핵심이었습니다. 지역 문단이 환기하고 토론하고 짚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 전성욱 평론가가 썼다는 올해의 심사평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은 기자일기를 쓰면서 검토했던 부분입니다. 2015년 이후 심사평들을 살펴보면 2년간은 선정작 자체에 대한 평만 냈습니다. 그 2년간을 빼면 2015년 이후 심사평들은 ‘점층법’으로 부산/지역 작가들의 작품 수준을 혼내고 있습니다. 혼내는 방식은 해를 거듭할수록 강도가 높아졌는데 올해 최고점의 표현을 구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선정작에 대한 평도 올해 최상위 상찬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질책과 상찬의 현격한 간극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간극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판단하기에 올해의 심사평은 세심하지도 단단하지도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그랬습니다. 논란 이후 전성욱 평론가가 소협 홈피에서 밝힌 대로 ‘점이지대’의 작품들에 대한 평이 몇 줄이나마 나온 것은 그래도 다행이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심사평이 세심하게 이런 방식으로 쓰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심사위원이 상찬하는 ‘은아의 세계’가 품은 세계에 더 가까운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기사는 심사위원들을 모독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모독으로 판단하는 것은 좁게 보는 것입니다. 모독으로 여겼다면 반론하는 ‘심사경위’ 글의 지나친 언사도 기사를 쓴 기자에 대한 모독에 속할 것입니다. 비판하고 토론하는 데도 격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기사를 지역문학을 위한 충정에서 작성했습니다. 3가지 의도가 있었습니다. 기사에 쓴 것이지만 부언합니다. 첫째는 지역작가들이 더 열심히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사평을 더욱 균형감 있고 세심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번 선정작이 왜 뽑혔는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특히 토론이 필요한 것은, 소설이 시대의 거울이라면, 시대의 지적 도덕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면 부산소설문학상이 내거는 수상작은 표현 기법 주제설정 심도 측면에서 어떤 기준을 보이는 것인데 그 기준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이번 기사는 충분히 가능한 기사고 좋은 토론과 자극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라는 전성욱 평론가의 문장이, 다음 문장을 잇기 위한 징검돌에 불과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토론과 자극을 위해 기사를 썼던 것입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 그런 의미에서 구모룡 선생의 ‘왜 김가경의 <은아의 세계>인가?’라는 글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하는 기회를 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5. 저는 <은아의 세계>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상당히 새로운 소설인 거 같습니다. 상당히 철학적인 의도를 지닌 소설인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불친절한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서정 소설’이라고 했지만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는 징검돌을 디디기 힘든 ‘성긴’ 방식의 서술이 서정성을 자아내기에 적당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은 것으로 읽힙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다수 일반 독자를 위한 소설이 아니라, 작가와 평론가를 위한 소설이며(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작가들도 따라 읽기 힘들다고 합니다), 한창 운운하던 ‘근대문학 종언’ 이후의 소설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우리는 종언 이후 기준이 모호한 정말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 있는 것일까요.

 이 소설에서는 두 개의 세계가 맞서 있는 거 같습니다.

 소설 표현을 가져오면 ‘오감으로 작동하는 세계’와 ‘서로 기망하는 자들만 알아보는 세계’가 그것입니다. ‘오감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은아’입니다. 소설 제목 ‘은아의 세계’가 ‘기망하지 않고 오감으로 작동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봅시다. 나는 ‘방물장수 이야기’와 ‘보고밀의 이야기’를 핵심적인 것으로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는 뭔가 맞물려 있는 거 같은데, 구조적으로 층위가 어긋나 있습니다. 기망에서 벗어나려는 보고밀은, 방물장수 이야기에 빗대면 각성한 동네사람쯤 될 거 같은데 각성한 동네사람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렇게 층위가 어긋나 있다는 겁니다.

 가장 난해한 것이 보고밀이 잠자리 나라의 사육관에서 구토를 하면서 우는 장면입니다. 오감의 세계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의문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이런 불친절한 삽화들이 불쑥불쑥 나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자면 예컨대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반복의 기법을 통해 독자들이 그것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가 모호하고 난해하다고 소설의 서술까지 모호하고 난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은아의 세계>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더욱 밝은 눈의 분석을 기대합니다.

 

 최학림 씁니다.

댓글목록

키메라님의 댓글

키메라 작성일

드디어 논란의 당사자인 최기자가 등장하였습니다. 문학상에 관한 이런 저런 논란이 많습니다. 이번 경우는 작품을 두고 생산적인 토론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의 입장에서 모든 문학상을 이처럼 정성을 다하여 검토하긴 힘들겠습니다. 최근 부산작가상 평론부문 논란이 심각합니다. 심사위원(정훈 평론가)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바(페이스북) 있습니다. 어찌보면 양심선언이 포함된 고백입니다. 나는  이보다 문학평론이 아닌 문화비평을  제출하였고 유일한 출품이라 문제적이라는 생각을 덧붙입니다. 대체로 지역정부의 예산을 받을 경우 어떤 기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회의 평론가 37명 가운데 상을 받을 자격을 가진 이가 15명 내외라면 매년 한 권 혹은 전혀 책이 발간되지 않는 해도 나올 것이라 봅니다. 이러한 작가상에 대한 최기자의 공정한 평가와 솔직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말하자면 기자가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도 있지요. 기사를 보도하는 입장에서 지나치게 가치평가를 하거나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 문학하는 사람들의 충정이 기자보다 덜하진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만나서 해도 될 이야기인데 기왕에 최기자의 글이 있어어 한 말 덧붙입니다. 여하튼 이제 권위를 잃었으니(박탈하였으니) 성가신 심사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멋에 중독된 강자들이 많은 세상이니 그들이 동일시하는 판단에 맡기는 게 좋겠다고 봅니다. 조만간 소주나 한 잔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