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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왜 김가경의 <은아의 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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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키메라 작성일21-12-10 15:28 조회1,0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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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왜 김가경의 <은아의 세계>인가?

 

문체, 서사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글쓰기를 전개해 왔고 이 작품이 기왕의 글쓰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내세울 만하다고 생각한다.

활자, 책 등의 미디어가 만드는 허구성, 위험성, 사기성을 오감으로 느끼는 감응의 세계와 맞세우려 하였다. ‘의 아버지, ‘보고밀이 활자와 말의 간계가 지배하는 저편에 있다. 아버지는 엔딩에 이르기 전에 다시 등장하여 을 이야기한다. ‘에게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다. ‘보고밀은 인기 서평 작가의 허위와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이 숨 쉬는 퇴락한 사과 과수원 속의 집으로 도피하여 <잠자리 나라>에서 일을 거들고 있다. ‘은아는 실재에 직접적으로 감응하는 의식과 감각을 지닌 이다. 이들 사이에 가 참여 관찰자적 거리에 서서 서술한다.

마치 직물을 짜듯이 이들의 연관성을 사건과 암시 그리고 복선을 교차하면서 서사를 진행한다. 단편을 시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 소설은 서정 소설에 가깝다. 자기를 되찾으려는 보고밀이든 활자 세계와 다른 감응을 지닌 은아든 서로 공존하면서 관계를 형성한다. 한편으로 는 아버지의 사기에 연루되어 있지만 너그러운 사장의 배려로 태만에 대한 자각을 얻는다. 마치 바틀비적인 삶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도 보이는데, 작가는 이를 뚜렷하게 부각하진 않는다. 다른 한편 보고밀의 구토에서 로깡땡의 실존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비유일 뿐이다. 그만큼 소설의 함의가 풍부하다는 뜻이다. ‘은아의 구토나 반응은 몸과 감각 그 자체의 발현이다. 이를 성급하게 에코 페미니즘과 결부할 필요는 없겠다. 김가경은 어떤 이념이나 구호를 전제하지 않는다. 결을 따라서 인물들을 배치하고 창조한다. <은아의 세계>라는 표제는 짐짓 은아의 세계를 강조하려는 감응의 정치학을 의도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대안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문제 제기로 그칠 때 소설은 많은 해석을 견인한다. 수수께끼처럼 답을 말하지 않는 결말이 여운을 남긴다. 다섯 인물이 제 역할을 적합하게 하면서 다채로운 가운데 서사 내부로 모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는 계산된 장치를 배치하면서 서사를 이끌었다. 이토록 섬세하고 치밀한 서사를 만나긴 쉽지 않다. 어쩌면 김가경은 약간 낯선 작가처럼 보인다. 우리는 익숙한 데 더 애착을 보내면서 낯선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우선 이 정도로 수상작의 독후감을 보인다. 함께 정독하면서 토론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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