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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문의 독서일기-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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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7-29 01:03 조회3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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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김경희
공명 311P
2021년 초판 1쇄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인 40대의 저자는 출판사의 권유로 80세가 넘은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두 달 동안의 시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후, 아버지는 희귀암 진단을 받았고 일 년 후 세상을 떠난다.인터뷰는 백문백답으로 이루어졌다.

저자는 오랫동안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극적으로 화해에 성공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함께 보낸 마지막 사계절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쪽이 저릿하게 아팠다.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아버지는 젊은 날 익산시에서 싸움 잘하는 깡패였고 주먹의 1인자였으며, 씨름대회에서 늘 일등을 해, 소 한 마리를 끌고 오기도 했다. 잘 생긴 한량이었으며 의리와 폼으로 살았다. 씨름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깡패인 아우들을 다방에 불러모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씩을 돌리며 어깨를 펴곤 했다.

그랬던 그가 시골 부자인 엄마와 결혼하고 난장을 떠돌던 깡패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와 개인택시 운전을 하며 수유리에 정착한다. 1남2녀를 키우며 사업을 하다 망해 겨우 마련한 집까지 날린다. 주먹 출신답게 가정 살이에는 초연하여,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하며 한량처럼 살아간다. 그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막내인 저자는 어릴 때부터 무책임한 아버지를 보며 무시하거나 외면해버리며 불화를 키워간다.

아버지란 존재가 모두 희생적이고 훌륭할 수는 없다.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도 있고, 자랑할 거 하나 없는 아버지도 있다. 그래도 그들은 아버지라는 자리를 지키고 살아간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며 커간다. 누군가의 아버지는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인터뷰 89번째 문답에서 작가인 막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나타낸 아버지의 답이 있다.
--나는 소설가가 판검사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판검사는 있는 공부를 달달 외워서 하는 거지만 소설가는 창작을 하는 거잖니.창작은 없는 것에서 만들어 내는 거야. 그건 정말이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야. 네가 하고 있는 일은 없는 것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야.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안다.
80세를 넘긴 아버지가 소설가인 딸에게 안겨준 최고의  마지막 찬사다.

거의 모든 딸들은 한때 아버지를 사랑했었다. 그런데 어쩌다 서로 소원해졌고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 버린다. 세상 대부분의 딸과 아버지의 관계다.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 나이 또래의 미국에 살고 있는 딸을 생각하고 많이 울적했다. 그리고 간간이 미소를 머금기도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재미와 감동을 아우르는 책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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