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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Busan Novelist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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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와 불개미

저자:정혜경 / 출판사:전망

「개미와 불개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쓰나미에 쓸려가는 것만큼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악재와 마주하고 있다. 가진 것 없어 구차하고 신산스럽지만, 그래서 희망이 없다고들 말하고 있는 자리에서 있지만, 그들은 기어이 꿈을 꾼다. 용접공과 무속인의 죽음, 거문고 연주자, 학교 폭력, 지적 장애를 가진 이의 마음의 무늬 등 껍데기만 말할 뿐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외면한 삶의 속살, 마음의 무늬를 그리고 있다.
표제작 「개미와 불개미」는 개미처럼 힘없는 이들이, 어떻게 타자화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티끌 같은 개미들이 수없이 밟혀나가면서도 땅속 개미집과 조직력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을 때도 벌과 함께 살아남은 것처럼, 사악한 이들의 탐욕만큼이나 가진 것 없는 이들의 연대가 지니는 더 큰 희망의 빛을 그리고 있다.
「주인 없는 집」은 한 무속인의 삶과 죽음을 통해 비빌 언덕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무속인이라는 특별한 삶을 영위했기에 접할 수 있었던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품위 있는 마무리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검은 현」은 거문고 연주자의 삶에 들이닥친 낯선 방문객과도 같은 늪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움으로써 기어이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깊고 푸른 잠」은 이기심에 눈이 멀어 첫 단추를 잘못 여민 주인공이 3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자신의 오판을 깨닫게 되고, 참담한 절망의 시간을 맞이하는 마음속 여정을 그리고 있다.
「안단테 안단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마어마한 변모를 감당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느리게, 세세히 보아야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마치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살게 하는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존재함을, 만 오천 번을 외워야만 익혀지는 특별한 시간을 살다 간 지적 장애아이의 삶을 통해 그리고 있다.
「승진의 하루」, 「하이드의 마지막 선물」에서는 삶의 쓸쓸한 뒤 안에서 무상함을 맛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삶의 무늬라는 사실을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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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 숲의 휘파람새

저자:장미영 / 출판사:산지니

‘말하지 않음’, ‘말해지지 않음’의 가장자리에 맴돌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등단 이후 꾸준히 현대인의 모순된 심리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온 장미영 소설가가 첫 소설집 『사려니 숲의 휘파람새』를 출간했다.
“7편의 소설들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진실과 거짓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오현석 문학연구자는 해설 「언어의 가장자리에 머무르는 진실들」을 통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의 독자들을 끊임없이 진실과 거짓 판단을 해야 할 심판대에 올려서 시험하고 있다”며 소설을 상찬한다.
저자는 일곱 편의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 또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이유 모를 혼란과 관계 변화를 겪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좇기를 시도하며 타인과 연결되려 하는 청년,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기억으로 인해 혼란을 느끼는 가족, 진실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음으로써 남을 기만하는 인물들. 『사려니 숲의 휘파람새』에 실린 단편을 통해 독자들은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과 거짓은 어떻게 나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 무기력한 현실 속 자신의 꿈을 좇는 청년들
표제작 「사려니 숲의 휘파람새」의 주인공 지웅은 남들보다 소리에 민감해 작은 소리까지 구분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하루하루 무기력한 삶을 살던 지웅에게는 좋아하던 휘파람새 소리를 들으러 길을 떠났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기억만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할 의지도 열정도 없다. 어느 날 지웅이 사는 빌라에 한 여자가 이사 온다. 여자의 집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지웅은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간다.

꽃, 동물, 새, 모든 것들은 말이야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짓이 없다는 거야.(64쪽)

「그룹 헤로인」은 예술과 사랑의 경계에 선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 김준은 예술을 통해 진짜 나를 찾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밴드 ‘헤로인’의 리더 병화 형을 예술가로서 존경하는 준은 어느 날 자신의 여자친구 가인과 병화 형의 불륜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준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주변 관계를 정리하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예술을 찾아 병화 형의 집으로 향한다.

✏ 거짓은 어떻게 진실이 되는가

「거짓말의 기원」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민서 엄마는 민서 귀의 상처를 이유로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인 주인공에게 어린이집 운영과 관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CCTV를 통해 아무 일이 없었음을 확인했는데도 민서 엄마는 지속적인 민원 제기와 함께 어린이집 홈페이지에 글을 쓰고 주인공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상담까지 받게 되는 주인공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점점 지쳐간다.

「타로텔러」는 미래를 예견하는 무당 엄마의 능력을 이어받았지만 신내림을 거부하고 타로텔러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타인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그녀는 타로점을 보러 온 손님을 큰 위험으로부터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끊임없이 거부하지만,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 동네 현보」에는 상반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늘 웃고 다니는 말더듬이 현보는 동네 사람들의 구박을 받는 인물이다. 현보의 동생 현수는 형과 달리 똑똑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동네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현보의 말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현수의 말에는 적극 동조한다. 현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형에게 뒤집어씌운다. 주인공 연희는 현보와 현수를 통해 사실이 아님에도 진실이 되고 사실임에도 거짓이 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사실과 진실 사이 거리는 얼마나 될까. 사실이라도 믿어 주지 않으면 거짓이 된다. 하지만 거짓이라도 믿어 버리면 곧 진실이 된다. 믿어 주지 않는 진실, 믿어 버린 거짓.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233쪽)

✏ 웅크리고 있던 기억의 파편을 대면할 때

「끝나지 않은 약속」의 주인공 진수는 딸 채영을 홀로 키우며 지낸다. 아내 수진은 채영을 낳고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채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를 본 적 없다. 분명 채영의 기억에 엄마는 없는데 어느 날부터 채영은 자꾸 생전 수진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은 아줌마 이야기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줌마와 대화하고 선물을 받고, 수진과 진수가 살았던 돌산마을을 찾아가기도 한다. 진수는 채영을 통해 피하려 했던 과거 수진의 기억과 마주한다.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수진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줘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에서 수진과 나의 손수건을 꺼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채영이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나는 채영이를 목말 태웠다.(104-105쪽)

「붉은 벽돌집」은 해리성 무감각증을 진단받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단절된 채 삶을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다. 청소 일을 하는 준상은 붉은 벽돌집의 청소를 맡는다. 가출 청소년들이 어지럽힌 벽돌집 안에서 준상은 남겨진 물건들을 보고 갑작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마주한다. 수많은 장면으로 인과성 없이 쪼개진 기억은 선후관계도, 원인과 결과도 없다. 의식 곳곳에 박힌 기억은 시시때때로 준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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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천국

저자:김옥숙 / 출판사:산지니

▶ 비대면과 익명성, 그 달콤한 가면 뒤에 숨은 악마.
홀 장사 매출이 떨어지자 배달 장사에 뛰어든 식당사장 만석. 배달 시스템이 가진 비대면이라는 특성상 진상손님이 전에 비해 훨씬 늘어 골치 아프다. 툭하면 “환불해 주세요”, “리뷰에 올릴 거예요”라며 ‘리뷰 갑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환불도 해 주고, 사과도 해 줘야 별점 테러를 막을 수 있으니 참는 수밖에.
배달 주문으로 이어지기까지 그 식당의 리뷰는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구매자는 배달 앱 리뷰를 확인한 후 평점이 높고 리뷰가 좋은 식당을 선별해 주문을 하니, 만석도 여느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리뷰 관리에 온종일 전전긍긍이다. 리뷰어는 바로 이 점을 악용한다. 평점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리뷰 관리에 공을 들이는 식당사장을 노리고 익명의 리뷰어들은 별점 테러를 저지르며 식당사장에게 ‘왕’으로 군림하려는 악랄한 심보를 보이는 것이다. 배달 앱에서 구매자는 닉네임을 사용해 리뷰를 단다. 이들이 식당에 근거 없는 악플을 달며 활개치고 다녀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닉네임, 익명이라는 가면 뒤 악플러가 휘두르는 폭력에 식당주인은 그저 당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악플러는 존재했고, 이 악플러는 누군가를 울리고 또 죽였다. 하지만 유례없는 전염병의 유행으로 우리 사회는 누군가와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접촉만 허용하는 문화에 길들여져 갔다. 이렇듯 ‘비대면 친화적’인 일상의 도래는 그 비대면의 특성을 이용한 더 많은 악마를 키우기에 이르렀다.

▶ 약자와 약자가 벌이는 일상의 각개 전투
외출도, 샤워도 삼간 채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것이 낙인 은둔자 민성. 민성은 배달 앱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을 먹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그리고 무언가 불만이 생겼을 때 그 식당에 리뷰로 갑질하는 것은 더 즐겁다. 허위로, 과장해 인신공격까지 해 대는 이 리뷰는 악플이다. 민성이 아무리 심한 악플을 달아도 대부분의 식당사장은 되레 민성에게 죄송하다고 한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권력을 가진 자의 기분.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기분. 이 짜릿함에 민성은 ‘악플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민성으로 하여금 ‘프로 악플러’가 되도록 만든 것일까.

민성에게 학교는 정글이었고 지옥이었다. 아이들은 살찐 민성을 보기만 하면 돼지라고 놀렸다. 여럿이 둘러싸고 민성을 이유 없이 때렸다. (중략) 민성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중략) 엄마는 민성의 축축한 바지를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대뜸 등짝을 후려쳤다. 엄마는 이게 과연 내 새끼가 맞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민성은 엄마가 등짝을 세게 후려쳤을 때, 엄마에게도 외면당한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민성의 어린 영혼은 유리컵처럼 깨지고 말았다. _p. 116~118

민성은 유년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집에서는 엄마의 차별과 힐난에 시달렸다. 수치스러운 경험을 당하고 그것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민성. 원망, 분노, 열등감이라는 감정의 복합체는 어느새 괴물이 되어 무고한 이에게 그 감정을 표출하는 악마가 되고 말았다.

노동운동가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선호 형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나라는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야.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 어쩌면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이 가게 이름을 그리운 나라로 지은 건지도 몰랐다. _p. 78

20대 시절, 만석과 함께 자동자 부품공장에서 근무하며 친해진 선호는 당시 공장이 폐업하게 되자 폐업반대 투쟁을 이끈 공장 노조위원장이었다. 이후 호프집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고, 이 가게는 대학로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역시 코로나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가게와 직원의 규모를 줄이며 고군분투했으나 점점 더 어려워지는 주머니 사정에 선호는 직접 배달 라이더가 되어 배달을 다닌다. 입버릇처럼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선호에게서 우리 사회 수많은 자영업자가 외치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결코 약자를 뒤돌아보지 않는다. 약자는 각자도생으로 마주한 정글을 탈출하여 살아남기 위해 생존 전투를 벌일 뿐. 서로가 서로를 베고 도려내고 후벼 파는 이 전투는 낙오하지 않기 위한 저마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 플랫폼 자본주의 작동 방식의 명과 암
휴대폰에 배달 앱을 다운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배달 앱은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배달 앱과 배달 대행 플랫폼의 발달은 바쁜 현대인에게 빛이 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둠으로 자리 잡았다. 당일배송, 새벽배송, 총알배송….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배달 서비스. 배달되는 물건의 종류는 커피 한 잔에서부터 무거운 가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배달 안 되는 게 없는 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지금. 하지만 플랫폼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리성 이면에는 그 편리를 위해 땀 흘리며 죽어 가는 노동자가 있다.
배달 앱과 같은 플랫폼은 고객의 정보를 데이터로 저장하고, 여기에 노동자를 끌어들인다. 그러고는 고객과 노동자를 연결해 줌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플랫폼에는 무수한 데이터가 이미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고객과 연결되기 위해 자영업자는 이 플랫폼을 거치는 방법을 택한다. 자영업자는 플랫폼에 직접 고용된 것은 아니지만, 마치 구속된 것처럼 그 안에서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쏟는다. 플랫폼의 작동 방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착취의 굴레를 쓰는 것이다.
이제 플랫폼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거대 공룡이 되었다. 『배달의 천국』에는 영세 자영업자를 착취의 구조로 밀어 넣는 이 플랫폼 자본주의의 어둠과 잠깐 기댈 벽조차 빼앗겨 버린 사회 약자의 초상이 함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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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밍스쿨

저자:박혜영 / 출판사:아시아

사랑이 궁금하지 않는 세대,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시대의 거짓말 같은 공간
예비 신부 학교 ‘차밍스쿨’

제4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박혜영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차밍스쿨』. 예비 신부들을 위한 기숙 학교라는 가상의 공간 ‘차밍스쿨’을 내세워 현대의 성과 사랑, 결혼관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펼쳐낸다.
‘도로시’는 오랫동안 왕래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뜻밖에 큰 유산을 상속받게 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구상하던 중 ‘차밍스쿨’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위해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세상의 모든 커플들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첫 번째 교육생 7명을 받아 문을 여는 것에서부터 『차밍스쿨』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랑은 후회 없이 목숨 거는 거고 결혼은 후회하며 목숨을 이어가는 겁니다”
대담하고 신랄하게 사랑과 성, 결혼의 민낯을 이야기하는 사랑학 강의
솔직하고 통쾌한 여성들의 성장 서사

차밍스쿨에 입교한 일곱 사람, 유지원, 윤세라, 김보람, 김윤영, 허미리, 임슬기, 소시은은 저마다의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차밍스쿨에 괜찮은 신붓감이 있는지를 탐색해줬으면 좋겠다는 중매쟁이에게 고용되어 온 아르바이트생, 적극적으로 차밍스쿨의 설립 취지에 감화되어 부모를 설득해 입교한 사람,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등쌀에 시달리다 들어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쓰고 싶은 소설의 소재를 찾으려고 들어온 작가지망생도 있다. 다양한 개성과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게 되면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하고, 저마다의 삶도 예상하지 못했던 국면을 맞게 된다.

차밍스쿨은 결혼을 앞둔 이들만이 아니라 결혼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한다. 입교생들은 규정상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수업을 듣는다. 어머니들은 그 수업을 통해 자녀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억지로 이어온 자신의 결혼생활도 돌아보게 된다.

박혜영 소설가는 작가의 말에서 “『차밍스쿨』은 이 시대의 결혼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관한 이야기”라고 쓰고 있다. 연애도 결혼도 녹록지 않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남김없이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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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망루

저자:배이유 / 출판사:알렙

망루에 한번 올라오면 다음 주자가 정해질 때까지
아래로 내려가 땅을 밟을 수 없었다. 그게 파수꾼의 운명이었다.
표제작 「밤의 망루」는, 작가가 프란츠 카프카의 『성(城)』을 오래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로 품고 있다가 쓴 소설이다. 「밤의 망루」에서는 고독한 망루에 홀로 서서 거대한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임무를 안은 채, 어떤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홀로 성을 지켜야만 한다. 작가는 이를 두고 “불가항력의 본연적 임무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빈 땅, 안개로 휩싸인 적막한 공간에 발을 딛으며 헤맸다. 오리무중. 추상에서 구체화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다”고 술회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파수꾼의 삶은, 한 여인의 등장으로, 그리고 그녀의 탈주로 요동치게 된다. 파수꾼과 같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던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파수꾼에게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인가. 망루 위의 파수꾼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네 인생의 마무리는 멋지게 환상적으로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자, 들어봐.”
작품집의 문을 여는 「검은 붓꽃」은 몸의 소리를 애써 부정하고 가두려던 시대의 이야기이자, 그런 시대를 살아온 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소설이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고, 무엇보다 두려워하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깊숙이 감춰진 성기를 드러내어 똑바로 바라보긴 처음이었다.” 작가는 한 사람 안에 고착된 고정 관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의 관습적인 시선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체라고 믿는 오류를 저지른다. 특히 그동안 여성들은 자기 신체의 주인 노릇을 못한 경우가 많았다. 작가는 질문한다. 과연 지금은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서 살고 있느냐고.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루를 선물하는 건 어때요.
작품집의 두 번째 이야기, 「홍천」은 어느 해 여름, 장의차처럼 검은 차를 탄 네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그날 서로 처음 본 그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 차에 동승했다. 과연 그들은 왜 홍천으로 가는가. 작가는 언젠가 홍천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 가기 전부터 어떤 정보도 없었음에도 ‘홍천’이란 장소로 소설을 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을 둘러보며 어떤 이야기가 자신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고 회고한다. 마치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내 안에서 흘러나와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알아서 자기 길을 만들어 간 것이다.”

이순은 발가락 낱낱을 떼어 움직여주었다. 너희를 덩어리가 아닌 개별적 인격체로 존중할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여도 속으로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부부, 조금 더 정확히는 상운의 아내 ‘이순’의 이야기이다. 한때는 그들에게도 “서로의 심장에도 반짝하고 불이 켜지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순과 상운은 “각자 다른 별”이 되었을 뿐이다. 어느 날 상운이 이순을 위한 선물로 사들고 온 어항 속 물고기를 보는 것이, 이순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넓지도 않은 집 안에서 이순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갈 곳이 없다”고 느낀다. 오랫동안 살아온 부부 사이라 해도 가장 가까이 밀착해서 산다 해도 서로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눈치조차 못 채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다른 성향이나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어느 한쪽이 인내하지 않으면 가정을 건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물밑의 가라앉은 속말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착하다, 천사 같다, 자애롭다, 자비롭다’ 같은 칭송 뒤에 가려진 불편함, 거북함.

지금도 순간순간 사라지고 있어.
코로나 시대, 점점 더 삭막해지는 사회 분위기와 단절된 관계 속에서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고 말한다. 「옛날에 농담이 있었어」에는 그런 작가의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경’과 ‘나’가 나누는 대화, 농담과 서로를 향한 시선, 마음. 그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게 너무 빠르게 일회용품처럼 소비되고 버려져 ‘옛것’이라는 창고 혹은 ‘낡음’, ‘쓸모없음’이라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박제되는 고도로 디지털화되고 스피디하게 전환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작고 연약한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꿈틀거리는 생명력, 야생성, 자유를 향한 갈망을 엿보게 된다.

모든 것들은 소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2022년 제27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작, 「소리와 흐름: 록의 부치지 못한 노래」는 상실한 것에 대한 그리움, 이별과 만남의 우연과 필연, 이어짐과 끊어짐의 반복, 영원과 순간. 찰나의 스침같이 반짝이다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록의 헌사이다. 실험적인 문체의 변화와 파격을 시도해 하나의 아름다운 화성의 울림으로 다가가고 싶었던 작가는, “누구에게나 있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 냈다. 가볍게 문장을 끊어버리는 콤마들, 단어의 무수한 반복, 그러는 순간 갑자기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은 짧은 들숨과 긴 날숨이라는 상처의 호흡법을 매력적으로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마음이 가난한 시대, 우리에게는 어쩌면 실종된 누군가가 필요하며, 실종의 그리움이 우리를 견디게 한다는 성찰의 지점을 선사한다.”(심사위원 유익서·박향·권유리야)

시간은 흘러간 게 아니라 어딘가에 스며 있다 불쑥 나타난다.
시간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멈춘다 흐른다」는 얼핏 보면 전혀 연관성 없는 장면들을 갖다 붙인 듯한, ‘파편적 구성’을 취한다. 출근길 위를 흐르다 멈추다 하던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토끼, 도로로 뛰어든 흰 고양이를 본다.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의 순간, 꿈도 아닌 어떤 장면이 스르륵 펼쳐지는 것을 경험한다. 과거에 바라본 풍경과 현재의 순간이 연결되고, 과거의 기억이 침투한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 현실과 가상, 지금 이 순간과 저 순간이 교차한다.
그렇게 작가는 “시간의 조각배에서 흔들리는 삶의 파편들”을 그려 낸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은 순간이고 허깨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장소, 현재라는 시간, 만져지는 감촉이 실체인지, 실재하는지 의심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작가는 “그런 느낌을 동시성의 공간에서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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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빛

저자:정영선 / 출판사:강

『아무것도 아닌 빛』의 무대는 도시 주변부이고 주된 등장인물도 노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산의 외곽 끝자락인 낙동강 유역 ‘은곡’의 서민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90세를 전후한 연치의 남녀 노인을 중심에 두고 이들과 연관한 여러 인물을 주위에 배치하고 있다. 시간도 팬데믹에 처한 최근 몇 년 동안이다. 노년의 삶이 그렇듯이 단조로운 일상의 사건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그 아래 각기 복잡다단한 개인사가 내장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우연하지 않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 모여 살게 된 오랜 인연을 지닌 사람들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들은 예외적일 만큼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들로서 주변부 서민아파트로 모여들었기에 그 만남이 자연스럽다.

작가는 텍스트의 입구에서 “신불산 유격대 활동과 사상범의 수감 생활은 『신불산?빨치산 구연철 생애사』”를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는 창작의 계기가 실존 인물과 연관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줄곧 ‘구연철’에서 비롯한 ‘안재석’을 일인칭 주인공으로 극화하여 서술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물론 실재와 허구,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일은 소설의 특권이므로 텍스트 해석에서 ‘구연철의 생애사’는 하나의 참조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먼저 텍스트를 진행하는 동력인 플롯을 찾으면 이 소설을 구성하는 큰 뼈대가 남녀 두 노인의 ‘특이한 사랑’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빨치산으로 신불산에서 활동하다 휴전 이후에 체포되어 삼십 년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안재석과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조향자’는 서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전쟁이 나기 전의 도피 과정에서 수정동에서 안재석이 조향자를 두 번 만나지만 안재석이 기억하는 만큼 조향자는 그를 인지하지 못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보듯이 다수의 도피자가 수정동의 조향자 집을 은신처로 삼았으니 숨겨주는 이보다 숨는 이의 절박한 마음이 더 오래 남았고, 안재석이 감옥에서 고문에 못 이겨 조향자를 아내라고 둘러댄 부채감과 죄의식도 기억을 고착한다.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플롯의 유형을 규정하는 측면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히려 둘의 다른 기억과 마음에 기반한 성격의 차이를 먼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은곡에서의 만남에서 잘 드러난다. 안재석이 육십 년도 더 된 과거를 생각하며 조향자가 사는 이곳으로 이주한 행위와 달리 조향자는 그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소설은 두 사람이 만드는 사건의 치열함이 아니라 두 사람을 나란히 병치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성격화하고 이들과 연관한 인물들을 드나들게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에서 굳이 인물의 경중을 따진다면 조향자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안재석이 한 시대의 행위자였다면 조향자는 어두운 고난의 시대를 고스란히 품고 산 인물이다. 2부 ‘여든 살의 독서모임’은 조향자를 주 인물로 내세워 서술하는데 이 지점에서 전체 서술에서 시점의 교차를 확인할 필요를 느낀다. 이미 말한 대로 1부 ‘누가 말했는가’ 1~4장은 일인칭 전지의 안재석 시점이고 2부 ‘여든 살의 독서모임’ 1~4장은 삼인칭 전지의 조향자 시점이다. 1부와 2부를 보면 확실히 안재석과 조향자를 병립하려는 서술 의도가 분명하다. 그런데 3부 ‘지금, 여기’는 1장을 일인칭 전지의 류정일 시점으로, 2장을 일인칭 전지의 안재석 시점으로 서술하여 류정일과 안재석이 각기 자기를 말하게 한다. 다시 4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1~3장은 삼인칭 전지의 조향자 시점으로 돌아오고, 마지막 5부 ‘기억의 주름’은 1~3장을 일인칭 전지의 안재석 시점으로, 4장을 삼인칭 전지의 조향자 시점으로 마감한다.

우선 외적 형식으로 보더라도 이 소설에서 안재석과 조향자가 주요하고 이들의 사이에 류정일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성 인물을 일인칭 주인공 서술자로 극화한 반면 여성 인물은 서술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안재석의 정동을 따라서 서술하려는 작가의 의도와 연관한다. 그 마음의 중력이 조향자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길고 긴 생애의 우여곡절이 품고 있는 많은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5부 ‘기억의 주름’에서 제시되며 특히 마지막 3장을 통하여 조향자의 시점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점에서도 이 텍스트가 지닌 기억과 욕망의 역학은 능동적 인물인 안재석을 수동적 인물인 조향자가 감싸 안는 형국이다.

2부 ‘여든 살의 독서모임’의 1, 2, 3장이 조향자의 고단한 생활 세계의 구체적 세목을 서술하고 있다면 4장은 독서모임에서 받아온 『정음』이라는 책을 매개로 그녀의 생애에 얽힌 내력을 소급한다. 사실 이 한 장으로도 서사의 충동이 차고 넘친다. 자신의 태생부터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끌어준 류정일, 그리고 부모와 같이 원폭 피해자로 원자병으로 고생하고 치매를 앓다 죽은 남편 동준과 파혼과 실패를 거듭하며 자살한 아들의 이야기를 숨 가쁘게 회상하기 때문이다.

3부의 1장은 일인칭 주인공 서술자가 류정일이다. 다른 빨치산 동지인 박동배, 이영섭이 안재석의 서사 속에 포함되고 원폭 피해자인 이동준이 조향자의 서사 안에서 서술되는 양상과 다르게 독립되어 있다. 그만큼 류정일이 여러 내러티브를 연결하는 결절점의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패전과 더불어 류정일은 오사카 츠루하시를 떠나 시모노세키에서 도항이 여의치 않자 야마구치 조선학교 주변에서 머물다 해가 바뀌면서 향자와 함께 부산으로 귀환한다. 『정음』은 조선학교의 한국어 교재이며 향자와 동준도 이 책을 통하여 정일의 지도하에 한국어 교습을 받는다. 야마구치는 정일과 향자와 동준을 연결하는 처음의 장소이다. 그리고 향자가 정일의 죽은 누이동생의 이름을 받은 탓도 있지만, 그들은 남매 역을 하거나 부부 역을 하며 귀환에 성공하여 수정동에 정착하게 된다.

4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1~3장은 2부에 이어서 다시 삼인칭 전지의 조향자 시점으로 돌아온다. 1장에서 ‘장수원’으로 가야 한다는 어지러운 심경에서 들른 국밥집에서 안재석을 만나고 그가 조향자의 집에서 잠을 청하는 사건이 생긴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그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녀는 남편과 아들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지녔고 열일곱 평 아파트를 나와서 장수원으로 가기를 권유당하는 말년의 처지에서 다른 누구를 진지하게 알려고 하는 의지를 갖지 않은 듯하다. 또한 세상의 풍파를 겪으면서 터득한 ‘수동적 능력’이 그녀로 하여 분간하고 구분하는 일을 거부하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하튼 이렇게 안재석은 조향자의 죽은 남편이 기거하던 방에서 잠을 자고 모자를 둔 채 나오게 되며, 이러한 사건은 조향자가 다시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서 겨우 벗어나 시모노세키를 거쳐 야마구치에 이르러 그녀를 만난 남편의 신산한 삶을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래전에 간직한 희미한 빛이었다. 영감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도, 꼭 심장 뛰는 소리처럼 들렸다”라는 구절로 끝난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래전에 간직한 희미한 빛”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조향자에게 아들은 “크고 밝은 별”인 “금성”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남편과 아들의 부재는 그들의 유골을 흘려보낸 그림자의 강과 같은 세월을 남긴다. 이러한 가운데 그녀의 내면에 “오래전에 간직한 희미한 빛”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빛이 아니다.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를 훌쩍 뛰어넘어 팬데믹으로 어두운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안재석과 조향자가 여러 인물과 어울려 만든 사랑과 믿음은 비가(elegy)로 그치는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인가? 이 소설은 이와 같은 마음의 문제를 탐구한다. 그래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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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드론독서 4

저자:정광모 / 출판사:도서출판 전망

소설가의 독서일기이다. 문학, 인문, 사회, 과학을 넘나들고 가로지르는 다양한 책들을 읽고 난 감상의 글을 엮은 책이다. 어떤 편견이나 도그마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종횡무진 ‘드론’ 독서법은 근현대 문학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지평을 가늠해 보게 한다. 또한 저자는 오랫동안 독서모임 등을 통하여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회적 실천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에도 독서야말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한 인간의 정수를 흠뻑 마실 수 있는 멋진 기회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인생에 있어 멋지고 유용한 체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독서’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독서의 길을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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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누군가가

저자:김지현, 오선영외 / 출판사:네시오십분

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함께 쓴 앤솔로지 소설집. 참여 작가로 상업출판과 독립출판 사이를 오가며 여러 지역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여성 작가를 섭외하였다. 이는 등단 여부 및 활동 지역 등에 의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도 제한적인 기존 문학장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앤솔로지 소설집의 테마는 ‘여성, 공포, 공간’이다. 다섯 명의 작가가 함께 목소리를 낼 만한 의미 있는 주제이면서 각자의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테마라는 점에서 기획되었다. 『문밖에 누군가가』에서 작가들이 포착하는 공포는 귀신이나 외계의 존재, 혹은 극한의 상황에서 초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지금 이 순간도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포의 감각을 더 생생하게 우리 몸에 돋을새김하며, 동시에 그 감각을 느껴야 하는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문밖에 누군가가』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소설집 속 ‘초대장’에 있다. 하나의 이야기 세계의 문이 닫히면 그 이야기의 작가가 다음 이야기 세계의 문을 넌지시 열어 주는 모습이 연상되도록, 앞에 실린 작품의 작가가 바로 뒤에 실린 작품의 초대장을 썼다. 하나의 책에 그저 글을 같이 싣는다는 의미로만 그치지 않고, 참여 작가들 간에 상호 소통과 교류의 산물로서 초대장이 고안되었다. 또한 초대장은 작품 속으로 독자를 불러들이는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이야기 바깥에 있던 독자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어느새 자신 또한 이야기 세계 속에 깊게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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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포왜관 수사

저자:배길남 / 출판사:함향

땅에는 역사가 있다. 역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특별한 땅 왜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의 이야기, 그 잊힌 이야기가 10년간의 조사와 집필로 완성되었다. <두모포왜관 수사록>은 왜관을 되살렸다. 왜관을 다룬 첫 소설이다.
<두모포왜관 수사록>은 ‘동래의 잠상 임소를 효시하였다.’는 인조실록의 한 줄에서 시작되었다. 이 소설은 초량왜관이 생기기 전, 72년간 부산포 곁에 자리했던 두모포왜관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변방인 왜관이 동아시아를 뒤흔든 사건, 그 숨겨진 역사를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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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저자:박명호 / 출판사:작가마을

박명호 소설가의 소설집. 이번 박명호 소설집은 먼저 다섯 편의 작품만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 소설집의 절반 정도이다. 이는 무엇보다 독자에게 가벼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출판사의 기획의도이다. 최근의 독서층은 너무 두터운 분량보다는 가벼운 것을 좋아하는 추세다. 하여, 페이지 수를 150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려고 출판사와 협의하여 준비되었다.
문학적으로는 박명호 소설 특유의 간결하고 투박스런 맛의 문체들을 만난다. 주인공들의 진실한 삶의 곡선 속에서 느끼는 부분들이 곧 독자들의 이해이자 카타르시스이다. 특히 사랑에 대한 각자가 지닌 페이소스는 다르지만 진솔하다면 건강하다는 것을 작가는 아낌없이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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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핑홀

저자:안지숙 / 출판사:걷는사람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아픈 엄마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기로 결심하고 브로커 ‘비비’를 만난다. 그런데 수술대를 보니 도살업자의 작업대 같다. 수술을 취소하겠다고 하자 비비는 폭력을 쓴다. 이때 눈앞에 자잘한 얼룩들이 떠다니는가 싶더니 비비가 사라진다. 마당에서는 오토바이 탄 사내가 나타나 유진더러 타라고 한다. 유진을 구해 준 사내의 이름은 알렉스. 그가 유진을 데려간 곳은 베티가 사장으로 있는 나무달 카페다. 이 카페가 ‘디 오더’의 본거지다.
알렉스와 베티는 ‘디 오더’라는 단체의 회원으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삭제한 다음 스위핑홀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비문증처럼 떠오른 얼룩 가운데 하나가 스위핑홀의 문이 되는 것이다.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하나는 유진이 엄마를 위해 심장을 구하기까지의 여정이고, 또 하나는 천둥새를 숭배하는 부족의 신화를 품고 있는 ‘디 오더’라는 비밀단체의 이야기다. 소설은 갑질 민폐와 약탈의 행태 가운데 레드마켓, 곧 장기 불법 매매 사건을 중심에 놓고 디 오더와 약탈자 간의 승부를 다룬다.
그런 와중에 유진은 디 오더와 얽히면서 체 게바라를 만나 심장을 구해 오고, 디 오더 요원들은 남의 삶을 약탈하는 약탈족을 찾아내 제거한다. 약탈족은 대체로 중장년층과 노인 세대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과 자본주의가 만든 사회 구조 탓이다.
소설의 화자인 유진은 디 오더 요원인 알렉스와 베티를 만나고,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를 만나 심장을 구하는 여정에서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 윤리적 삶은 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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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저자:나여경 / 출판사:전망

나여경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인간 내면의 상처와 치유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하여 타자에게로 더 깊이 다가가고자 한다. 여섯 편의 단편 모두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들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운세 운명을 믿지 않는 청년의 아이러니한 죽음, 배달 중 쏟아진 붉은 피 흘리는 아귀찜을 주워 담는 투잡 청년의 고단한 삶, 관계의 어긋남으로 빚어진 방화사건, 참담한 사고의 기억을 온전히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두 친구, 각기 다른 양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시장 사람들, 독처럼 스민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우리네 공동체 삶에 관한 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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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고래의 뿔

저자:유연희 / 출판사:강

유연희의 세번째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은 그의 전작 『무저갱』(북인, 2011), 『날짜변경선』(산지니, 2015)과 더불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채워져 있다. 바다를 향한 작가의 관심에는 국내 최대의 항구도시인 부산에 연고를 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집요함이 엿보인다.
바다를 무대로 한 만큼 『일각고래의 뿔』에 실린 소설들에서 뭍을 떠난 뱃사람들의 항해는 곧잘 인생행로에 비유되곤 한다. 광막한 바다 위에서 어둠과 시커먼 파도를 헤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의 불빛을 따라 뱃머리를 돌리는 일이 어찌 인생과 다를 수 있을까. 더욱이 “태어난 땅에서 가족들과 살다 죽는 것은 옛말”이 된 시대에 방랑은 통과의례이고, 개척 정신은 필수 덕목인지도 모른다. 불법 포경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인물들의 이야기인 「일각고래의 뿔」을 포함하여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어떤 이유로든 고향을 떠나 바다와 이국의 땅을 헤맨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잠깐의 모험과 도전을 꿈꾸기도 하고(「마지막 테라스 만찬」), 휴양지에서 맞닥뜨린 대자연의 공포 앞에 주눅이 들기도 하며(「송어회는 이 인분」), 이국땅에서 풍토병과 향수에 시달리기도 한다(「블루 시드」). 방랑과 정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이 인물들은 안정된 생활을 바라는 욕망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삶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유연희의 소설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오랫동안 바다가 전형적인 남성들의 공간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루카치가 근대소설을 두고 “성숙한 남성의 형식”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험을 통해 자기 내면의 진정성을 찾는 근대적 주체란 곧 남성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의 진정성이 바다와 같은 혹독한 세계와의 대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선원들의 강인한 육체에 새겨진 남성성은 근대적 주체의 필수 조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의 이름을 여성의 이름으로 지어온 뱃사람들의 전통에서 “여자를 그리워하는 뱃사람들의 허기와 갈증을 이용해 항해의 고단함을 무마시키려는 의도”(「무저갱」, 『무저갱』)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모험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은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근대적 주체들이 귀향할 장소를 상징하는 낭만적 대상으로 재현되곤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라는 모험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남성적 플롯이 유연희의 소설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여성 인물들이 그 플롯 속에서 어떤 전망을 얻게 되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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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

저자:황인규 / 출판사:인디페이퍼

『책사냥』(황인규 작, 인디페이퍼 펴냄)은 엄격한 중세수도원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어떤 책일까? 신본주의가 만연한 중세에서 금서로 치부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쾌락주의를 표방한 에피쿠로스학파의 바이블이다. 긍정적 인생관과 자유로운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가운데 비신성적(무신론이 아니다) 윤리 체계를 주장하는 사상이 담겨 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훌륭한 시민생활의 기준으로 삼지만 결코 방탕한 생활을 옹호하지 않는다. 일상에서의 소박한 즐거움, 한정된 범주 내에서의 쾌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학파를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는 주의로 간주한 수도원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타락을 용인할 수 없다며 이 책의 열람과 대출, 필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인문주의의 세례를 받은 주인공 포조는 이단서적이라는 처분을 받고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이 책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 엄격한 중세 신본주의 사회에서 발견된 그 책
소설은 엄격한 중세 신본주의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이단심문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하늘을 찌르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 프라하 사람 히에로니무스와 보헤미아 사람 얀 후스에 대한 화형이 소설 전반부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런 사회에서, 그것도 신본주의가 가장 엄격한 수도원에서 천년 동안 봉인된 책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구하기 위한 책사냥꾼의 아슬아슬한 모험에 독자들은 두근두근할 수밖에 없다. 시인이자 평론가 이승하는 발문에서 “도둑질하는 부분의 박진감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못지않고, 중세시대 유럽의 서체(타이포그래피)와 문헌들에 관한 박물학적 지식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능가한다.”고 극찬했다.

* 근대의 바탕 인문주의에서 자아를 찾다
작가 황인규는 한국 소설 작가 중에서도 독특하게 국내를 벗어나 해외의 역사적 인물에 천착해왔다. 전작인 『마지막 항해』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북동항로의 탐험가인 허드슨이나 이번 신작 『책사냥』의 포조가 그 예다. 이처럼 국내 작가가 허드슨이나 포조 같은 인물을 재조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당시의 그 나라 문화에서부터 역사, 지리 등 우리가 알기 어려운 다양하고도 세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사냥』을 쓰기 위해 작가가 참고한 책만 해도 수십 권에 수백 편의 논문까지 세세히 훑어야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작가가 허드슨이나 포조 같은 이에게 초점을 맞춘 이유는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고(허드슨), 인문주의의 밑거름이 된 책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을 세상에 알렸기(포조) 때문이다. “르네상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근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 사유체계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내 의식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그는 협량한 세계관을 벗어나 근대를 향하는 길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문주의의 인물들을 소설로 되살려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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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일의 여정

저자:이인규 / 출판사:푸른고래

2019년 3월
북미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간
김여정의 실종을 다룬
본격 정치. 미스터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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